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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동’의 포스터 이미지. 형민빌딩에 입주한 로펌에서 일하는 5명의 어쏘 변호사들. 법정물이기보다 오피스물이며, 매회 ‘먹방’을 공들여 촬영했다. 티브이엔(tvN) 제공


‘서초동’은 어쏘(월급쟁이) 변호사들의 일과 삶을 그린 드라마다. 긴장감 넘치는 법정 드라마가 아니라, 일상을 담은 오피스 드라마다. ‘먹방증권으로돈벌기
’의 비중이 의외로 높다. 매번 다른 음식이 등장하고, 음식을 클로즈업하며, 식사 자리의 티키타카를 살린다. 동료들과 나누는 음식이 직장생활의 가장 큰 위로와 낙임을 보여주며, 어쏘 변호사들이 특별할 것 없는 직장인임을 납득시키는 장치다.
직장인의 관점으로 본 변호사 직업의 세계
‘서초동’을 쓴 이승현 작가는 현직 변호사승부주
다. 전문직 작가가 쓴 드라마가 처음은 아니다. 판사였던 문유석 작가의 ‘미스 함무라비’ ‘악마 판사’도 있고, 현직 의사 한산이가의 웹 소설을 각색한 ‘중증 외상 센터 : 골든아워’도 있다. 이승현 작가는 더 독특한데, 변호사보다 작가 경력이 앞선다. 2009년 첫 완성 시나리오가 영화진흥위원회 ‘한국영화 시나리오 마켓’에서 월간 추천작으로 선정되었다. 양음선생종목추천
그 후 변호사가 되어 근무하다가, 2017년에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정규과정에 입학해 프로듀싱 전공을 마쳤다. 변호사 경력을 계속 쌓았고, ‘서초동’은 그가 11년째 변호사로 일하며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극본이다. 요컨대 그에게는 작가로서의 자아와 변호사로서의 자아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공존한다. 즉 변호사라는 직업의 세계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한 릴게임 다운로드
발자국 떨어져 객관화할 수 있는 최적의 눈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직장인의 관점으로 본 변호사라는 직업의 세계’가 ‘서초동’의 핵심 주제다.
드라마는 처음부터 이를 분명히 밝힌다. 법정 드라마를 보며 쇼맨십 가득한 변론을 준비하던 신임 변호사를 무색하게 만드는 심드렁한 법정 풍경을 보라. 드라마는 기존 법정 드라마 속에서 대극장처럼 그려와이엔텍 주식
졌던 법정의 광경을 사무적인 말들이 오가는 일상의 광경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런 도입부를 통해 ‘서초동’이 천명하는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리얼리즘을 표방한다. 둘째, 변호사를 일반 직장인과 같은 종류의 고충과 애환을 지닌 존재로 그린다. 셋째, 변호사라고 특별한 정의감이나 사명감을 지닌 존재는 아니지만, 변호사라서 겪게 되는 윤리적으로 괴로운 문제들이 있다. 드라마는 이 지점을 드러내며, 각 인물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준다.
‘서초동’의 이러한 원칙이 별로 세련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변호사를 여전히 특별한 천재성과 열정과 야망이 요구되는 존재로 그리며 잔뜩 힘을 주는 드라마 ‘에스콰이어’와 비교해보면, ‘서초동’의 담백한 미학과 진보적인 세계관을 지지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에스콰이어’는 원래 중세 영국에서 기사 아래 계급의 귀족 계층을 뜻하는 말이었고, 현재 미국에서 변호사 이름 뒤에 붙여 전문성과 도덕성을 갖춘 직함으로 쓰인다. 변호사를 ‘서초동’에서 일하는 직장인으로 볼 것인지, ‘에스콰이어’라는 신분의 흔적을 지닌 고귀한 전문직으로 볼 것인지가 여실히 드러나는 작명 센스다.
그들도 우리처럼. 노동문제
드라마는 서초동에서 9년 차 어쏘 변호사를 하고 있는 안주형이 개업을 귀찮고 두려운 일로 여기고 있으며, 어쏘 변호사로서 어떤 일이든 군말 없이 해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료들이 묻는다. “그래도 진짜 하기 싫은 일이 있지 않아?” 안주형은 “개업하면 더 가리지 않고, 다 해야 할 것”이라며 시큰둥하게 답한다.
이들의 대화는 복선이었다. 이제 ‘정말 하기 싫은 일’이 펼쳐진다. 안주형의 최악은 전 여친 박수정의 남편을 이혼소송의 대리인으로 만나는 것이었다. 박수정의 남편은 혼인 파탄의 책임이 있으면서 위자료 1천만원을 주지 않기 위해 소송한다. 아내를 폭행한 증거가 없다는 남편의 주장을 안주형이 변론해 승소한다. 안주형은 최대한 ‘감정을 개입시키지 않고’ ‘공과 사를 구별하며’ 의뢰인과 고용주의 요구에 맞춰 일해주었다. 그런데 재판이 끝나자, 남편은 자신이 일부러 아내의 전 남친 안주형 변호사를 찾아왔다며 “변호사를 돈 주고 샀다”고 우쭐댄다. 이는 악의적으로 접근한 진상 고객에게 변호사의 노동권이 인격 말살 수준으로 침해당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전문직도 진상 고객을 피하지 못한다. 의사, 약사, 교사, 강사 등도 진상 고객의 표적이 되곤 한다. 안주형이 자신을 ‘여느 직장인과 다름없는 노동자’라고 생각했다면 오히려 ‘이처럼 불편한 사건은 맡지 않겠다’며 ‘노동권 보호’를 요청했어야 옳다.



‘서초동’ 4회. 안주형은 전 여친의 이혼소송에서 남편 측 대리인이 된다. 승소하자, 남편은 자신이 일부러 안주형을 찾아왔으며 “돈을 주고 변호사를 샀노라”며 이죽댄다. 티브이엔(tvN) 제공


조창원이 맡은 최악은 ‘접견 변’이다. 조창원은 주가조작 혐의로 구치소에 갇힌 재벌 2세를 접견해 말동무를 해주는 일을 맡는다. 변호사로서 사건을 의논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범죄자의 비위나 맞추러 간다. 재벌 2세는 주가조작 행각을 신이 나서 떠벌이다가 “나 나가면 내 밑에서 일하라”며 제안한다. 조창원은 “내가 왜 너 같은 범죄자랑 일하냐?”며 자존심을 세웠지만, 다음날에는 또 접견 가서 그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조창원은 원래 유쾌한 성격이지만, 희롱에 가까운 감정노동으로 직업적 자존감이 박살 나면서 성격이 점점 시든다.



‘서초동’ 5회. 조창원은 구치소에 갇힌 재벌 2세를 접견해 말동무나 해주는 ‘접견 변’ 업무를 맡아, 나날이 자괴감에 빠진다. 티브이엔(tvN) 제공


하지만 변호사의 노동문제로 가장 강력한 예시는 출산휴가도 못 받고 퇴직하게 생긴 배문정이다. 출산 육아 휴직은 법에 규정된 노동자의 권리다. 당연히 보장받겠거니 생각했지만, 고용주는 의외의 말을 들려준다. “지금껏 전례가 없다. … 3개월, 6개월 단기로 사람을 어떻게 뽑냐? 담당 변호사 자주 바뀌는 것, 의뢰인들이 싫어한다.” 고용주는 배문정 변호사에겐 알리지도 않고, 신입 채용공고를 내라고 지시한다. 퇴직 종용이나 다름없다. 성차별은 전문직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임신, 출산, 육아로 인해 개별 여성들이 겪는 경력상의 불이익을 해결하지 않는 상태로 거시적 차원의 출생률 타령을 해봤자 공염불이다.



‘서초동’ 9회. 배문정은 소송 업무를 좋아해 임신 후에도 계속 일하려 했지만, 출산-육아 휴직을 받기 어려운데다 유산 위기를 느끼자 마음이 복잡해진다. 티브이엔(tvN) 제공


윤리적 3D업종. 당신의 선택은
변호사는 직장인이라는 보편성에서 비롯된 고충도 있지만, 변호사라는 특수성으로 인한 괴로움이 있다. 그것은 윤리의 문제다. 하지만 드라마는 흔한 방식으로 윤리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2회에서 안주형과 강희지는 설전을 주고받는다. 임대주택에 사는 입주자가 저축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해 임대주택에서 쫓겨나게 생긴 사건이 있다. 저축은행 측을 대리한 안주형은 승소를 자신했지만, 재판 직전에 변수가 생긴다. 유사 사건에 대하여, 입주자를 퇴거시킬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나온 것이다. 하지만 안주형은 판례를 알리지 않고 재판을 계속하려 한다. 그런데 강희지가 자신의 의뢰인도 아닌 입주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어 소송을 취하하도록 만든다. 강희지는 자신의 오지랖이 공익의 실현이라 확신한다. 하지만 안주형은 뜻밖의 말을 한다. “이제 저축은행은 임대주택 당첨자에게 대출을 안 해줄 겁니다. 잘 갚을 사람들도 피해를 보는 거라고요.” 드라마는 약자를 도운 강희지를 선으로, 강자를 도운 안주형을 악으로 보는 조악한 이분법을 벗어나 사안을 폭넓고 공정하게 보는 시선을 제공한다.
하지만 안주형은 윤리의 지뢰밭을 끊임없이 넘나든다. 회사의 실적 압박으로 자살한 보험설계사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 안주형은 먼저 상담했던 유족이 아니라 수임료를 더 많이 준다는 회사 편에서 변론하게 된다. 안주형은 망자의 젊은 시절 우울증 병력을 찾아내 승소한다. 그러나 회사의 실적 압박은 사실이었고, 곧바로 확인된다. 안주형이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보험설계사가 간청하는 보험을 하나 들어주는 것뿐이다. 그는 자신이 그동안 불편에 익숙해져 있었음을 자인하며, 다른 행보를 예고한다. 이런 감각의 변화는 강희지와의 만남 덕분이다.



‘서초동’ 10회. 실적 압박으로 자살한 보험설계사 유족과 상담하던 안주형은, 수임료를 더 벌려는 고용주의 지시로 회사 측을 대리해 법정에 선다. 안주형을 알아본 유족의 눈초리가 따갑다. 티브이엔(tvN) 제공


강희지는 자신의 의뢰인이 부디 나쁜 사람이 아니길 바란다. 그러나 무조건 믿는 우를 범하진 않는다. 설사 그가 아버지라 할지라도. 가능성을 열어두고 사실을 확인한다. 의뢰인의 혐의를 확인하면 자수를 설득한다. 강희지의 오지랖은 의뢰인이 아니어도 모르고 당하는 억울함이 없도록 애쓴다. 그의 이타심은 무료 변론 같은 나이브한 형태일 때는 제지당하지만, 상속 포기를 한정승인으로 바꾸는 타협적인 묘수를 제시했을 때는 통한다. 강희지는 의뢰인과 고용주를 설득해 어린아이에게 빚이 상속되는 불행을 막는다. 의욕만 앞세우지 않는, 일머리 좋은 변호사로 성장 중이다.



‘서초동’ 10회. 강희지가 의뢰인도 아닌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의뢰인에게 상속 포기 대신 한정승인을 택하도록 설득하고, 다른 가족들에게 설명하는 장면. 티브이엔(tvN) 제공


‘버닝썬’ 사건의 가해자를 변호했던 변호인단 중 유일하게 1심부터 3심까지 변호했던 전치영 변호사를 대통령실이 공직기강비서관으로 임명한 일로 시끄럽다. “변호사가 뭔데 일을 고르냐. 일을 마음으로 하냐. 변호사는 의뢰인의 말을 법률로 통역하는 기술자일 뿐이다.” ‘서초동’의 수많은 변호사 중 가장 속물적인 밉상이라, 유일하게 랍스터 대신 햄을 선물 받은 변호사의 입으로 뱉은 직업관이다. 그런 걸까. 하필, 겨우.



황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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